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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울산여행]태화강가의 입암 선바위

원고리 2012. 12. 17. 10:55

입암(立巖)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영양 입암과 포항 죽장의 입암이 있는데, 이곳은 들 입(入)을 쓴 입암이다.

울주 범서 입암리 태화강가의 선바위를 찾았다.

어느 파계승이 짝사랑한 처녀와의 전설을 간직한 선바위.

 

높이 33.2m, 둘레 46.3m의 이 선바위를 보듬고 있는 자리가 백룡담 여울이다.

옛 사람들에 의하면 백룡이 살았던 곳으로 날이 가물어 천지가 타오를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영검이 있었다고 한다.

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는데, 훗날 정각을 세워 ‘입암정’이라 했다.

이곳을 주로 이용한 선인은 정몽주, 이언적, 정구 선생이다.

 

전설은 이렇다.

옛날 범서읍 입암이란 마을에 예쁜 처녀가 살았는데, 이 마을 총각들은 그 처녀의 미모에 반하여 저마다 짝사랑을 하였고, 그 짝사랑을 이루어 보려고 처녀의 집주위를 맴돌았지만 처녀는 일체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스님이 동냥을 하러 이 마을에 내려 왔다가 마을총각들이 나누는 처녀의 미모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스님은 번뇌를 이기는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손엔 염주를 수없이 세며 다짐을 하고 부처님의 제자인 처지를 가다듬었지만 왠일인지 머릿속엔 자꾸만 미모의 처녀상이 스님의 다짐을 흩트리고 있었다.
결국 스님은 바랑을 진채 처녀의 집앞에 서서 염불을 외었다.
처녀가 공양미 한 됫박을 들고 대문을 나왔을 때 스님은 그만 속인으로 변해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발로하여 공양미를 자루에 부으려는 순간 스님은 처녀의 두손을 덮썩 잡고 말았다. 처녀는 놀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지만 스님은 처녀의 환상을 지울 수가 없어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처녀가 빨래를 가지고 강가로 나가는 것을 본 스님은 뒤를 따라가 빨래를 하고 있는 처녀의 자태를 바라보면서 덮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을즈음 태화강 상류에서 번쩍선 큰 바위하나가 유유히 떠내려오는 것을 본 처녀가 “어머나 이상도 해다, 바위도 장가를 가나”하고 혼자말로 내뱉었다.
처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위는 “우두둑”하는 폭음과 함께 빨래하는 처녀를 깔고 앉으려하자 이 광경을 보던 스님이 숲을 뛰쳐나와 처녀를 구하려는 순간, 스님도 함께 바위밑에 깔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미모의 처녀와 스님은 나란히 바위밑에 깔려 버렸으며, 바위는 여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정착한 바위가 바로 선바위이다. 선바위가 있는 백룡담에는 처녀의 영혼이 살고 있고, 그 아래 백천에는 스님의 영혼이 살았다고 하여, 날씨가 흐리거나 비라도 올라치면 스님의 영혼이 현형(現形)된 큰 구렁이가 오색찬란한 서광을 발산하면서 물살을 가르고 치솟아 백룡담에 처녀의 혼과 상봉하러 올라갔다. 이런날 밤에는 백룡담에서 여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스님의 영혼을 기다렸고, 이렇게 해서 상봉이 이루어지면 백룡담에는 온통 물굽이가 치솟으며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찬란한 서광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것은 파계승과 처녀가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 저승에서도 맺어지자 못하고 비라도 내리려는 밤에만 간혹 상봉하게 했다고 한다.

 

이곳부터 십리대밭숲의 시작된다고 한다.

강건너 전선줄에 까마귀떼가 새까맣게 앉아 있다.

시간이 있다면 태화강가를 걸어 봄직도 하지만 객은 그렇게 못했다.

시내로 들어가 십리대밭을 찾을 참이다.

 

 

*울산시청 자료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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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서 보고
글쓴이 : 길잡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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