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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은 진행형이다

원고리 2015. 12. 30. 23:20

 

사랑은 진행형이다  

 

 

옛이야기도 사람 사는 이야기고,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성정(性情)이 똑같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옛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지금과 달리 

더 진솔하고 의미가 깊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린 이야기만이

고전으로 남게 마련이니 말이다. 

 

고전이라고 해서

보기에 예쁘고

듣기에 고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대로

흉한 것은 흉한 대로 담겨져 있다.

그래서 고전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랑은 여러 가지 맛이다

 

사실

이야기가 지나치게 예쁘게만 포장되어 있다면

오히려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모든 걸 보여주고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들 삶에

도움이 될 그런 내용을 배울 게 없다.

 

우리들의 인생은 달기만 한 게 아니라

덟고도 쓰디 쓴 맛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좋은 것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나쁜 것에서도 배울 게 많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이 책의 저자 유광수

196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옥루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19세기 조선사회에

대중소설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그때 느낀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21세기 한국문학에서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싶어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끊임없는 연구와 창작 활동으로

고전을 현재에

되살리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가 2007년

제1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진시황 프로젝트>다.

 

어느 누가 사랑의 정답을 알겠는가?

저자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고전을 통해서 사랑을 파악하면

사랑의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올바른 이치 정도는 깨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 정도는 구분하고

숨겨진 사랑의 비밀을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나만의 사랑)에선

짝사랑, 마스터베이션, 도착과 페티시즘, 강간,

간통 등의 사례를

고전에서 찾아 소개하고 있다.

 

2부(서로의 사랑)에선

파편화된 사랑, 엇나간 사랑, 고운 사랑,

순수한 사랑,

숭고한 사랑 등을 테마로

고전 속에 비친 사랑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정말 사랑은 각양각색이다.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집트 왕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탈(脫)이집트해

시나이 산에서

하늘로부터 10가지 계율을 받아든다.

이른바 모세의 10계명이다.

이 중

하나가 '간음하지 마라'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에 있어서

사랑은 수많은 모습을 한 채

늘 인간들 주변에서 서성이며 함께했다.

 

그랬기에

타인에게 부당하게 아픔을 주는

사랑은 금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간통죄가 위헌에  해당된다면

이를

폐지한다는 발표가 있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많다.

 

책에도 간통 이야기가 소개된다.

간통의 다른 말이 '불륜(不倫)'이다.

윤리적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 인간들이 만든 약속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다.

본능에 충실한 성선택권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이게 맞는 주장인지는 너무 길어지므로

이 서평에선 논외로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과연

이게 진정한 사랑인가?

고전 속에 나타나는 간통도

부정적으로 그려져있다.

 

권선징악 차원에서

간통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았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서

외간 남자와 사통하고

집안을 풍지박산나게 만든

교씨 같은 여자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징치(懲治)당했다.

 

그런데,

옛이야기 중에 간통을 했지만

징치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나는

남자가 먼저 간통을 획책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가 먼저 모의하는 경우.

 

유교적 이데올로기 위에 세워진

조선 시대에 정말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실제 현실에서 간통이 빈번하지만

일일이

처벌받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절화기담(折花奇談)>은

이생이라는 남자가

유부녀를 어떻게 정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불륜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렇다.

열일곱의 아름다운 유부녀 순매에 반해서

양반 이생이 몸이 달아

뚜쟁이 할미를 매파로 넣어

어떻게든 한번 동침을 해보려고

안달복달하는 스토리인데,

시대적 배경은 19세기의 서울이다.

 

뚜쟁이 할미는

중간에서 돈을 뜯어 챙기면서

만날 듯 말듯 안달나게 만들면서

여덟 번이나 헛물을 켜게 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홉 번째에 겨우 만나 통정을 한다.

그리고 난 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이생이 그리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순매의 이모가 불륜을 눈치채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보초를 섰기 때문이다.

 

맛을 한 번 본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두 남녀는 이후 어찌 되었을까?

추측은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은 사랑인가?

아무리 봐도 둘의 사랑은

진실한 갈망이 없어 보인다.

 

순매는

이생을 사랑했다기보다는

그의 돈을 사랑했던 것 같다.

여기서

몸이 바짝 단 이생은 한마디로 '봉'이고,

돈을 왕창 챙긴

왕서방 같은 인물 뚜쟁이 할미는

전형적인 사기꾼 스타일이다.

 

현대에도

종종 있는 '맛보기'까지 구사한다.

순매의 몸까지 더듬게 해주며

애간장을 녹였던 것이다.

 

 

 

하지만

2년 동안 할미에게 코가 꿰어

질질 끌려다니던 이생은

돈과 시간을 많이 허비했음에도

아무런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아

 

할미에게

'대장부가 어찌 한 여자에게 연연하겠냐며

더 이상

순매의 '매'자로 꺼내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화를 내고 가버리자,

 

그간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큰 일 날 것 같아서

급하게

순매와의 동침을 마련했던 것이다.

더구나

사기꾼 할미는 

애초 자기 몸덩이도 아니니까 말이다.

 

여기서

진실한 사랑 운운 하는 게

사실은 우습다.

두 사람은

돈을 매개로 흥정한 것이고,

이미 서로

얻을 것 얻고 챙길 것 챙겼으니

더 이상 만날 필요성이 없었다.

 

현대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돈으로 여자 사는

매춘 형태인 것이다.

계산이 다 끝났으므로

한 번으론 손해라고 우길 남자도,

돈이 적다고

더 달라고 애걸할 여자도 없다.

 

남자가 여자를 꾀어

동침하려는 스토리는 많다.

대부분의

연애사가 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반대의

경우를 찾기란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기녀가 남성을 홀리는 경우일 것이다.

일반 여염집 유부녀가

적극적으로 남성에게 매달리고

나중엔

공공연하게 자기 남편에게 대들며

간통한 남자를 두둔까지 한다.

 

이런 스토리가 실린

<포의교집布衣交集>을 살펴보자.

 

 

 

이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도 공교롭게 이생이다.

나이 마흔이 넘은 양반이

벼슬을 하려고 충청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연줄을 만들고자 장승지 집에 머문다.

 

이 집 행랑채에 세 들어 사는

열일곱 유부녀 초옥과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지른다.

앞의 이야기와 다른 점은

불륜의 주도를 유부녀가 한다는 것이다.

 

초옥은

하층민 양씨 집 며느리로,

남편은 열아홉이었다.

본디 궁녀였는데,

 

시아버지가 몸값을 치러

양민이 되어 며느리가 된 것이었다.

그녀는 자색이 뛰어나

주변에서 집적대는 사람이 많았다.

 

끊임없이

방물장수가 찾아와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대감집 놈팡이 소년들이

금과 비단을 들고와 수작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남자를 밝히지도 않던

이런 젊은 유부녀가 믿기지 않게도

이생에게 먼저 추파를 던졌다.

 

늙다리 양반 이생은

벼슬도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문장도 뛰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풍채가 훤칠한 것도 아니었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위인인데,

초옥이 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옥이 착각한 것일까?

아니다.

초옥은 이생을 철저하게 알고 있었다.

여기엔

두 가기 사건이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랑채엔 세입자 평민들과

허드렛일을 하는 주인집 가솔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조심하거나 꺼려하는 기색이 없이

안채와 행랑채를 왕래하자

이에 못마땅한 이생이 하루는 날을 잡았다.

행랑채 사람들을 몇 명 잡아다 

깨진 기와 위에 무릎을 끓리고,

또 다른 몇 명은 엎드려 놓고 매를 쳤다.

 

이후 행랑채 사내들이

아예 중문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이 일에 초옥이 반해버렸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소 뒷다리에 쥐 밟기 격으로

행운이 얻어 걸렸다.

 

술과 안주를 바치고

진정한 대장부라고 치켜 세우며

달려드는 젊은 유부녀를

싫어할 남정네가 어디 있겠는가?

 

어느 날,

그는 잠을 깨운 할미를 따라 가보니

방에 홀로 초옥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덮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넌 언제 글을 배워 그토록 문장을 잘하느냐?"

 

어려서 궁에서 여러 책을 배운 그녀는

이생과 문답을 하며

밤을 꼬박 세우고 말았다.

 

날이 밝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편 때문에 돌아가야 했다.

밤새 이생은

손자를 봐도 시원찮을 판에

여색을 탐할 나이가 아니라는 자책감 때문에

우물쭈물하다가 주는 떡도 먹지 못하고

밖이 훤하게 밝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체를 탐하지 않은 이 머뭇거림이

초옥을 완전히 매료시켰던 것이다.

 

이 젊은 유뷰녀는

스스로 이생을 낭군으로 판단하고

얼굴보다는 자신의 어진 행동을

사랑한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랑은 오해의 연속이다.

이후로

둘은 밤마다 어울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세상에 비밀이 없다.

 

두 사람의 불륜은

초옥의 남편 귀에 흘러 들어갔다.

남편은 초옥에게

폭행을 가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다.

 

 

 

마침 이때

이생은 과거 공부 때문에 절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 불륜은 죄였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이를 면할 방도는 권세로 누르거나

도는 돈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도 벼슬도 없는

늙다리 양반 이생에겐 근심거리였다.

 

문제는 전혀 엉뚱하게 풀렸다.

초옥이 나섰던 것이다. 

죄를 지은 자기를 벌하라고

남편에게 대드는 통에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생이 절에서 내려오자

그녀는 꽃단장을 하고 몰래 그를 만나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므로

주눅들지 말라고

오히려 안심시키는 말까지 전했다.

이쯤되면

이생도 그녀를 두려워해야 할 판이다.

 

또 다시

밤마다 통정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남편은

식칼로 그녀를 죽이겠다고 덤비자

담담하게 그녀는

왜 손에 피를 묻히려 하느냐면서

스스로 자결하겠다고 그 칼을 달라고 하자

남편은 일순간 멍해졌다.

 

이후

그녀의 자살 시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시렁에 목을 메었다가 발견되기도 하고,

우물에 몸을 던졌는데

추위로 얼음이 언 통에 다치는 정도로 끝나는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이젠 남편이 애걸하고,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가 달래는 판국이 되었다.

초옥은 귀신 몰골로 변해 갔다.

 

이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아버지가 이생을 데려와

며느리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 인정받은 셈이었다.

 

초옥의 사랑은

이토록 처절하고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생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물론 좋아는 했지만

결코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놀면서 맛 보는 상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미모가 출중해 봉변 당할 수 잇으므로

따로

집을 하나 얻어 데리고 살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들어갈 돈이 걱정되어 그리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친구가 대신 취해도 좋냐는 물음에 이리 답했다.

 

"행랑에 있는 물건이니 뭐가 어렵겠나"

 

둘의 관계는 분명 불륜이다.

그러나,

초옥은 자신의 행동을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디 궁궐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는 전혀 딴 판인

비루한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차에

마치

'포의지교(布衣之交)'와 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을

이생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분명 '

로맨스'로

이해할 정도로 당당했던 것이다.

 

그녀는

성욕 때문에 이생을 만난 것이 아니었고,

돈 때문도 아니었기에

바람을 피면서도

자신의 행실을 정행(貞行)이라고 생각했다.

 

심리적으로는 슬픈 일이지만

그녀가 꿈 꾼

포의지교는 분명 허상이었다.

 

포의지교란 순수한 만남이다.

하지만

이생은 초옥의 몸을 탐했고,

초옥은 이생의 선비다움을 선망했다.

 

 

 

양자가

서로 바라는 것이 있는데,

이미 순수함은 물을 건넜고

또 상호 바라는 바가 다르니

합쳐질 수도 없는 현상이었다. 

이처럼

불륜은 아무리 포장을 해도

진정한 사랑이 되기 힘들다.

 

유부남, 유부녀는

이미 혼인 때 한 약속이 있다.

물론

약속은 바뀔 수 있고

서로 합의하면 이를 깰 수도 있다.

 

정말로 좋은 상대가 나타나면

불륜을 택하는 대신에

먼저 이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간통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유지한 채 벌이는 일이다.

 

이때 하는 가장 흔한 말이

"가정을 또는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서"이다.

정말로?

어떻게 지키는데 궁금하다.

이는 어떤 변명을 늘어 놓더라도

지금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좋은 것만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심보임에 분명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란 말이 있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음엔 가벼운 일탈 정도로 여겼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허우적댈수록 더욱 빠져든다.

그때마다

작용하는 것이 '자기 합리화'이다.

 

초옥도 그랬다.

이미 자신의 몸을 허락했고,

소문도 날대로 났다.

이제 와서 포의지교가 아니라면

정말 그녀에게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이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그저 만나고, 그냥 즐길 뿐이다.

 

불륜은 외다리 사랑이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이인삼각이인삼각' 같은 것이다.

 

하지만

외다리는 잠간은 갈 수 있겠지만

오래 갈 수는 없다.

일방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다가는

결국 지쳐서

더 이상 오랫동안 걸어갈 수 없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현실을 외면한 채 상상 속에 빠진다.

 

"왜들 그래, 로맨스라니까?"

 

 

 

서로 사랑한다면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 것은 감추고

남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

그것이 사랑에 독약이다.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너는 네가 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일깨우는 자세,

그것이 사랑의 방법이다.

 

맘도 착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

당연히 있다.

하지만 불행은

그녀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노력하지 않는 당신,

자기 것을 감추고 웅크리는 당신,

주는 것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당신을

그녀가 좋아할 수 없지 않은가.

 

백마 탄 멋진 왕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

당연히 있다.

하지만

백마 탄 왕자가 눈이 삐었겠는가?

당신을 찾아오게 말이다.

 

제발 정신 차리시라.

당신은 노력해야 한다.

사랑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완성해가는 것이다.

살다가

그냥 눈앞에 떨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그건 독이다.

사랑은 진행형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한우리 북카페가 제공한 도서로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출처 : 사 ♥ 랑 ♥ 나 ♥ 눔 ♥ 공 ♥ 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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