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자료실

[스크랩] 왕의 호칭

원고리 2016. 2. 28. 23:51

임금을 호칭하는데 어떤 임금은 대군 또 다른 임금은 조와 종을 부쳐 부른다. 임금 가운데 군으로 표현하는 임금은 연산군. 광해군. 대원군.등이 있으며 태종이나 세종처럼 종으로 끝나는 왕이 있는가 하면 태조.세조. 선조. 등 조로 분리하여 부르게 된 것은 보통 출생이 적자(장손)이거나 혁명 아니면 찬탈을 하여 임금에 오른 왕을 군(君)으로 표현하고 하나의 나라를 세우거나 그것에 걸 맞는 공을 세운 임금은 조(祖)를 붙이고 그렇지 않으면 종(宗)을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나 정확한것은 이렇다. 

 임금의 호칭에는 죽었을 때 붙여주는 시호(諡號)와 묘호 두 가지가 있는데 시호는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내리는 이름이고 묘호(廟號)는 임금의 시호를 말하는 것으로 시호나 묘호가 같은 말이어서 어떻게 생각하면 헷갈린다. 

임금이 살아 있을 때는 적당하게 부를 용어도 없고 본래의 이름을 불렀다가는 당장 극형으로 다스려지기에 전하나 상감마마로 통칭하여 부른다.

 시호와 묘호는 모두가 임금이 죽고 난 후에 정해지는데 그것은 임금이 죽게 되면 위패를 종묘에 모시면 앞으로 전하나 상감마마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니까 다른 임금과 서로 구별해야할 이름을 지어야 된다 그래서 "군""조""종"으로 분류하여 부르게 되는데 그러한 명칭들이 묘호(廟號)다.

군(君)이란 왕들의 서자에게 봉작을 붙이던 존칭으로도 사용되고 묘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군"으로 된 묘호를 붙이는 것은 임금자리에서 정상적으로 물러나지 않고 정변(政變)에 의해서 물러난 임금에게 붙여진다고 실록에 전해진다 그리고 묘호를 짓는 규범을 기록한 책이 황조실(皇祖室)인데 황조실록 책호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공(功)이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이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하니......등등 생략 

예를 들면 선조는 원래 선종이었다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선조로 되었다 그래서 역대 임금들의"실록"중에 선조 임금의 실록은 선조실록이 아닌 선종실록이다 그것은 임진란 초기 패전(敗戰)을 했기에 공(功)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훗날에 이르러 승전에 공(功)을 인정하여"조"로 다시 고친 것이다

그래서 묘호는 종묘에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지은 이름이고 시호는 임금이 살아 있을 때 경사스러운 일이나 임금을 찬양 할 일 또는 업적을 극진히 찬양 할 일이 생기면 만들기에 좋은 단어와 숙어가 동원된다.

 예를 들어 세종 임금의 시호는 영문예식인성명효대왕(英文叡式仁聖明孝大王)이다. 또한 세종 임금은 명나라 황제가 장헌(莊憲)이라는"시호"를 보내어 그것에 따라 세종실록을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이라 기록한다 이렇게 때로는 시호와 묘호를 함께 쓰는 경우도 있고 조와 종의 개념은 황조실(皇祖室)의 규범에 따라 공(功)과 덕(德)의 개념으로 구분된다 다시 말하면 살아생전에 창업할 정도로 공을 세우거나 나라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임금은 조(祖)를 붙이고 덕행을 많이 쌓아 성군의 자질을 발휘한 임금은 종(宗)을 붙였으며 그것도 사후(死後)에 붙여 주는 것이다.

또한 왕족에 대한 부르는 명칭을 보면 왕비는 후(后)즉 왕후. 또는 곤전(坤殿).내전. 중전. 중궁전이라 하고 왕의 어머니는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자전(慈殿)등으로 부르며 세자는 동궁. 춘궁. 세자국본. 소조(小朝) 라 부른다 그리고 왕과 왕비의 아들은 대군. 세자라 하고 딸은 공주. 또한 후궁의 딸은 옹주. 왕세자와 세자빈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세손. 딸은 군주. 왕세자와 후궁사이 즉 왕세자 첩의 딸을 현주.라 불렀으며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귀는 이부. 눈은 안정.(眼精)눈물은 옥루.(玉淚) 이마를 액상.(額上)손가락은 수지. 손톱은 수지톱. 손은 어수. 옥수. 입술은 구순. 땀을 한우. 다리를 어부. 콧물을 바수. 머리카락을 두발이라 불렀다
 

출처 : ♡ 황혼의 낙원 ♡
글쓴이 : 좋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