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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애국가에 대하여 ~~

원고리 2012. 10. 27. 09:20
안익태(安益泰) 先生초상화
      
       ♣ 애국가에 대하여 ♣
      애국가(愛國歌)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를 뜻하지요 
      우리나라는 애국가에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를 국가(國歌)로 사용하고 있어요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말과 곡조가 붙여져 나타난것은 
      조선말 개화기 이후부터라고 하네요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가지의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을 어떤 곡조로 불렀는가는 명확하지 않아요 
      다만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서구식 군악대를 조직해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라는 
      이름의 국가를 만들어 나라의 주요 행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지금도 남아있어요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래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하여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래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지요 
      해외에서 활동중이던 안익태(安益泰)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곡을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으나 이는 해외에서만 퍼져 
      나갔을 뿐 국내에서는 광복이후 정부수립 무렵까지 여전히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부르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래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지요 
      그후 해외에서도 이 애국가가 널리 전파되어 실질적인 국가(國歌)로 자리잡게 되었다하네요 
      애국가가 국가로 공식화 되면서 1950년대에는 대한뉴스 등에 담겨 
      적극적으로 홍보가 이루어 졌어요 
      그리고「국기게양 및 애국가 제창 시의 예의에 관한 지시(1966)」등 각종 지침ㆍ지시 
      등에 의해 국가의례의 하나로 점차 간주되었지요 
      「국기게양 및 애국가 제창 시의 예의에 관한 지시」를 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 제창이 진행되고 있을 때는 단정한 자세로 예를 표하고 
      그 주위를 통과하는 모든사람과 차량도 일단 정지하여 예를 표하도록 할 것’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1970년대 초에는 공연장에서 본 공연 전에 애국가가 상영되기 시작하였어요 
      또한 1976년부터는 정부기관 등에서 국기강하식을 시행하였지요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주요 방송국에서 국기강하식에 맞춰 애국가를 방송하였어요 
      그러다가 주요 방송국의 국기강하식 방송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 등은 1980년대 후반 
      중지되었으며 음악회와 같은 공연장의 애국가 상영도 이때 자율화 되었지요 
      한편 1984년에는 그간 지침 지시 등에 의해 시행되던 애국가 제창이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에 의해 법제적으로 명문화 되었어요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 겨레와 운명을 같이해온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선조들의 나라 사랑정신을 새롭게 되새겨야 하는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며 더 나아가 후손된 도리라는것을 알아야 하지요
      그리하여 애국가 제창 및 연주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는 안된다 하네요
      주요행사 등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경우에는 애국심과 국민적 단결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절까지 제창해야 한다 하네요
      애국가는 모두 함께 부르는 경우에는 전주곡을 연주하지만 
      약식 절차로 국민의례를 행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시 연주되는 애국가와 같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연주만 하는 의전행사(외국에서 하는 경우 포함)나 시상식
      공연 등에서는 전주곡을 연주해서는 안되며 
      애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반드시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예의라 하는군요
      우리 나라 국가인 애국가는 안익태(安益泰)<1906.12.5∼1965.9.16>선생이 작곡하였는데
      안익태 선생은 평양(平壤) 출생으로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함으로 해서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가 중학과정을 마치고 
      구니타치[國立]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웠다 하네요
      1934년 헝가리로 건너가 도야니에게서 작곡을 배우고 이듬해 빈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주로 지휘법을 사사받고 1936년에는 몇년 전 미국에서부터 
      준비해 왔던 <애국가>를 작곡했다 하네요
      이를 공로로 1957년 대한민국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19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작품으로는 <애국가>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애! 강산의 의기논개>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다 하는군요
      그리고 애국가의 가사는 윤치호.안창호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것도 공인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작사미상으로 남아 있어요
      본래 애국가 가사의 첫절은 
      “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 ”라고 되어 
      있었는데 도산 안창호가 하루는 서울서 내려온 교장 윤치호를 보고 이 가사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고쳐서 부름이 좋겠으니 교장께서 새로이 한절을 지어 보시라고
      청하자 윤치호가 도산의 의중을 다시 물으니 이에 도산께서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라는 구절을 
      보여주자 윤치호기 기뻐하며 찬성하자 도산이 이를 당시 교장인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는 설도 있구요
      또한 4절 첫구절도 원래는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임금)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 
      였으나 1919년 상해에서 이를 지금과 같이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개사 한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하는군요
      아무튼 애국가의 원작자로 남아 있는 문헌상에 윤치호 작사로 된것이 많으나 
      안창호설 또한 배제 할수 없기에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을 때 찬성 11표 반대 2표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하여 결정을 유보하였고 
      그 이후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결정은 없었지요 
      따라서 현재 애국가의 공식적인 작사자는 미상으로 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애국가는 다른나라와 달리 정부에 의하여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되거나 
      채택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국가로 불리다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지요  
      작곡자가 <애국가>의 가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였고 
      그 뒤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 즉 <이별의 노래>의 곡조에 
      붙여 불리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국사람인 자기가 직접 작곡해야겠다고 
      결심하고 1936년에 곡을 완성하였지요  
      그리고 같은 해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단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불렀는데 
      우리나라의 <애국가>가 불린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곡은 가장조(또는 사장조)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으며 
      속도는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의 악상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16마디로 되어 있으며 4절의 가사로 된 유절형식과 a-b-c-d의 구조로된 
      가요 두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간결하면서도 장중한것이 특징인<애국가>는 사용용도에 따라 세가지로 구분된다 하네요  
      피아노 반주로 된 것이 원곡이고  
      아무런 반주 없이 부르는 것과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있구요  
      반주가 있는경우에는 4마디의 전주가있고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경우에는 전주가 없대요  
      작곡자는 이<애국가>를 주제로 하여 1936년 자신의 대표작인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작곡하였다 하는군요 
      애국가 가사의 전문을 보면
      1절
      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保佑하사 우리 나라 萬歲
      後斂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2절
      南山 위에 저 소나무 鐵甲을 두른 듯
      바람 서리 不變함은 우리 氣像일세
      (後斂)
      3절
      가을 하늘 空豁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一片丹心일세
      (後斂)
      4절
      이 氣相과 이 맘으로 忠誠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後斂)
      여기서
      애국가에 1절에 나오는 하느님은 일반적인 의미의 하느님 이지요
      즉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나라를 돌봐주시는 분으로(단군신화)처럼  종교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한대요
      그리고 기독교 등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은 하나라는 의미의 유일신을 이야기 하지요  
      그냥 통칭적인 하느님이 아닌 유일신으로서의 하나님인 것이지요
      그래서 애국가를 부를 때 하느님이라고 해야지 하나님이라고 하면 안된다 하는군요
      물론 애국가를 작사 하신 윤치호 선생이나 안창호 선생이 기독교 신자여서 처음에는
      하나님으로 작사 했으나 어느날부터 하느님으로 개사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일국의 애국가는 종교를 떠나 모든 국민이 어울리는 의미가 부여되야만
      된다는 명분이 더 힘을 얻고 있는것이 사실이라 하는군요
      또 애국가 2절가사 중의 '남산(南山)'이란 구절이 있어요
      그런데 이 남산이란  의미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아요 
      어느 고장을 가나 '남산'은 많이 있지요 
      서울에만 남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곳 어느고장을 가도 남산은 많이 있어요 
      또 이 '남산'을 '남쪽에 있는 산'으로 알고 계신 분도 많아요 
      그러나 '남(南)'은 한자로 지금은 '남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 '남'은 '앞남(前南)'이었지요 
      즉 '남산'은 '앞산'이란 의미라 하는군요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인 것이지요 그리고 '북'은 '뒤북(後北)'이었지요
      그래서 '북망산(北邙山)'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가는 것을 말함이지요
      또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나오지요
      이 중에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많아요 
      그러나 바람소리가 아니고 '바람서리'이지요 
      그 뜻은 '풍상(風箱)'이란 뜻이래요
      즉, '바람 풍(風), 서리 상(霜)'이지요
      '풍상에도 변함없는 우리 기상일세'란 뜻이지요
      또 3절가사에 보면 공활(空豁)이 나오는데
      먼저 국어 사전을 통해 보게되면 공활(空豁) ‘공활하다’의 어근이지요 
      공활―하다(空豁―)[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텅 비고 너르다. 라고 나오지요
      다시 말해서 하늘이 텅비고 너르다 라는 의미라 하네요
      여기서 한문을 한번더 풀이해보자면 
      공 : 空 빌공 
      활 : 豁 뚫린 골 활 이지요
      비고 뚫려 있다는 의미 이지요
      애국가 3절에 나오는 '가을 하늘 공활 한데 ~' 는 
      바로 뒷 가사에 나오듯 
      가을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넓고 파랗게 물들어 있다 라는 말이라 하는군요
      아무튼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과 작사자 윤치호 선생의 친일 문제가 대두되긴해도
      우리 민족이 널리 부를수 있는 애국가를 만드신 분들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 언제나 기쁨을주는 산적:조동렬(일송) *-
      좌옹(佐翁)윤치호(尹致昊)先生
      191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모습도산(島山)안창호(安昌浩)先生
      
      

출처 : 좋은사람들 사랑과나눔
글쓴이 : 산적(일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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