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어느날 네 스님이 한 자리에서
약속하기를 7일간 묵언 정진, 즉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3일동안은 입을
연 스님이 없었다.
그 다음 날 밤이
깊어 가는데 촛불이 다 타
들어가 가물가물 촛불이 꺼지려고 하자.....
스님A : " 앗 ! 촛불이 꺼지려고 해"
스님B : " 말하면 안되잖아!"
스님C : " 왜 말을 해"
스님D : " 음 하하하.. 나만 말 안했다!"
묵언이란 입밖으로 말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묵언이 아니며,
입밖으로 말을 하지않는 것은 물론
마음속으로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묵언정진이다.
묵언 수행을 여법하게
잘 하기로 소문난 수좌(首座)가 있었다.
그는 십년의 묵언정진(默言精進)에다 등을
촌각(寸刻)도 바닥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에
일일 일식(一日一食)으로 여법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묵언수행을 지키느라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았으며
그는 극도의 고행으로 인해 뭇 수좌들의 존경을
받아 왔는터인데, 어느날 해제(解制)철이 되어 모든
수좌들이 만행(萬行)을 떠났는데도 그는 텅빈 선방에
홀로 앉아 정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선방의 천정에는
거미줄이 여기저기 드리워졌고
연결된 전깃줄의 누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불길을 처음 발견한
묵언수좌는 좌복을 던지고 비상목탁을
두들기고 온갖 제스쳐(gesture)를 다 써 보았지만
이미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타들어가 고색창연한 선방
한 채는 고스란히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다음날 경찰과 소방관이 나와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묵언을 풀지 않고 오직 손짓과 발짓으로만
조사에 응해 묵언수행 경험자의 통역으로 통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대중들의 의견은 두갈래로 엇갈렸지만
대다수는 그의 수행 열정에 감탄을 했었다.
그러나 선방의 조실스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갈.(一喝) "수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미친놈!
한사코 반대길로만 내달려
이젠 벼랑 끝까지 왔구먼 쯧쯧."..
그러던 그해 동안거 때가 되자 모두들
선방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데도 그는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운 마루에 홀로
앉아 정진을 계속했다.
이때 입승이 몇몇 건장한
수좌에게 곁눈짓으로 묵언 수좌를
무력으로 들어 옮기려 하자 이를 눈치챈
묵언수좌는 재빨리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그러자 대중들은 몇일 동안을
산속을 뒤적이며 그를 찾아 헤매다가
3일만에야 선원 뒷산의 어느 컴컴한 굴속에서
발견되어 건장하고 힘센 수좌들에게 끌려와 그는
그렇게 엠블런스에 실려 정신병동에 감금되어졌다.
그일에 대해 조실스님이 내린일갈.
"왜들 육신을 괴롭히는 것을 도를 닥는 것이라
착각들을 하나? 쯧쯧.. 에고(ego)와의 갈등을 도를
닦는 것으로 착각하는 못난놈, 에고의 본질은 본디 더욱
어려운 일을 해내 남들보다 더 잘나보이고 싶어하는
더럽고 속된 중생심일 게야.
도를 닦는 다는 것은
에고를 지운다는 뜻이며 에고를
지워야만 전체를 얻을 수 있는 것이거늘
남들에게 추앙을 받기 위해 도를 닦는 못난놈들
쯧쯧."...........
선(禪)은 가장 불합리적인 것이고
실질적이고 개인적 체험이며, 또한 가장
불가사의하여 분석이나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禪)이란! 체험의 적나라(赤裸裸)한
실제 파악이며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과
이상적인것과 본체적인것의 합일체의 직접적
파악이며 그리고 선(禪)은 무문이다.
그러나 문이 있어 들어가는 것도
문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그 문은 꼭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즉 문이 있고
없고의 구분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선(禪)이 아니다.
선은 원래 한 문이건만 스스로 많은 문을 만든다.
또한 불변적 정답(不變的正答)이
어느 상황에나 맞는건 아니며 생사대사(生死大事)를
깨닫는데는 오직 자신만 의지할 뿐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것.
남의 관념을 지닌자는 마치 앵무새의 지껄임마냥
말을 할 망정 그 의미를 모른다.
눈이 있어 눈이 드냐
귀가 있어 귀 이드냐 다함 없는
둥근 달은 온 천지에 찬란하고 구멍없는
피리소리는 근기에 따라 청량한데 십이처에
참 주인은 온데 간데 흔적 없고 빈~객들만
공연스레 번거롭게 오고 가는구나...,
항상 즐거운날 되세요 ~~홧팅!!
아사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