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스크랩] 진도 동석산/ 해발 240m라고 얕봤다간 큰 코 다치는..

원고리 2015. 9. 6. 13:00

언제 : 2008. 4. 14. 월. 맑음

누가 : 아내랑 둘이서 / 가족사랑여행 이틀째

코스 : 송호리 종성교회 - 178봉 - 칼날암릉 - 동석산(240m)- 안부에서 우측으로 돌아 천종사 건너편 산으로 하산(약 4시간)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터무니없는 오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초행길이었던 이번 진도 동석산 산행의 경우가 그러했다.

 

전날 함평에서 목포를 거쳐 진도읍에서 하루밤을 묵은 다음에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정보에 의지하여 어림짐작으로 동석산을 찾아가는 길이다.

섬에는 바다 안개가 가리워져서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워서 가는 길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딴에는 길찾는데 '빠꿈이'라고 자부하기에 애마에는 그 흔한 네비도 없다.(하긴 애마라고는 하나 주인을 잘 못 만나서 12년째 혹사 당하는 신세다.)

어지간히 목적지에 다달았다고 생각될 즈음, 물안개 위로 우뚝 솟은 암봉이 눈길을 끌기에 불문곡직 그 쪽으로 달려갔는데 안개가 걷히자 그저 그런 봉우리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801 지방도로에서 금노 방향으로 와우리 해안이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의 신비감이 사라진 실망, 그러나 달려온 수고를 생각해서 한컷 담았다.

 

길은 제대로 찾은 것 같다.

지산서초등학교에서 801 도로를 따라 남하하면서 우측편에 내달리듯 이어지는 암릉이 동석산 자락이 분명한 것 같아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컷.

 

잠시후 동석산 안내간판과 함께 마을 뒤편으로 미끈한 암봉 세 개가 나그네를 맞는다.

이번에도 길 찾는 솜씨를 어김없이 입증하자 '당신 최고'라고 추켜세우는 아내의 칭찬이 의례적인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우쭐해진다.

 

하산지점을 생각해 천종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터넷에 검색했던대로 종성교회를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08:20)

야산이라는 가벼운 마음에 가뿐하게 몸풀기 수준으로 생각하고서...

등산로 초입부터 등산로 양켠에는 탐스러운 고사리가 자주 눈에 띈다.

여기도 저기도... 산을 오를 생각은 않고 신바람이 나서 연신 고사리를 꺾던 아내가 소리쳐 부른다.

"어머나, 여보! 이것 좀 봐!"

"뭔데~ 호들갑이야?"

올망졸망 꽃을 피우기 시작한 춘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첫 암봉에 오르면서 초입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해발 240m 밖에 안되는 낮으막한 산'이라고 깔보고 왔는데 오도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내 기준으로 보면 별 것이 아닌데 아내의 처지에서는 밧줄도, 마땅히 잡고 지지할 곳도 없는 바위를 오르는 것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바위에 매달려 손발을 바르르 떨어 대는데 나도 더럭 겁이 났다.

젠장, 훨씬 더 험한 악산도 거뜬히 다녔는데 왠 겁이 그리 많담?

 

가만 생각해 보니까 유명세를 지닌 산은 아무리 험해도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시설은 갖추고 관리하는 편이다.

그러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에는 편의시설이나 안전시설이 미비하니까 실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셈이다.

 

 

그냥 내려가겠다는 아내를 설득반, 협박 반으로 끌어 올려서 천신만고 끝에 첫 관문을 통과했는데 난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저 암봉(178m봉?)을 지나야 오른쪽에 안전시설이 설치된 암봉으로 갈텐데 암릉길은 아내가 겁을 내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궁하면 통한다고, 아내가 탈출로를 찾아냈다.

다른 등산객들도 여기서 우리와 똑같은 경험을 했는지 굴러내릴듯이 가파른 골짜기로 탈출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천종사에서 올라오는 건너편 등산로(아래사진 암벽 사이 숲길)로 연결 되었다.

 

 

홀아비꽃대

그 와중에도 야생화는 놓치지 않고... 

 

암벽을 굴입구처럼 깎아낸 안부에서 한숨을 돌리며 종성교회쪽에서 올라오는 첫 암봉을 바라본다.

 

가운데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암봉을 거쳐야 제대로 암릉을 타는 것인데 그늘진 골짜기를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왔다.

 

산너머 산이다.

저 봉우리가 동석산인지, 그 너머에 있는 암봉이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여기서부터는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실은 천종사 코스로 올라왔으면 그리 위험하지 않았을텐데 아내와 동행하면서 아무 준비없이 종성교회 코스를 탄 것이 판단 착오였다.

섬 한 귀퉁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낮은 산이라고 얕잡아 본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 

 

 

아내도 내려가지 않고 도전하길 잘했다며 칼등바위(?)를 지나면서 성큼성큼 잘 걷는다.

아내의 화색과 되찾은 자신감에 나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암봉을 하나 지나왔을 뿐인데 '동석산이 보통 산이 아니구나'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산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소홀히 했음을 반성한다.

 

 

앞으로 남은 암릉도 마찬가지다.

이쪽 암릉은 낭떠리지로 단절되고, 건너편 암릉은 날카롭기가 칼날 같아서 우회하지 않고는 길이 없다.(여기가 칼날 능선인가?)

 

 

 

이곳도 암릉 대신 우회통과 구간이다.

암벽 오른쪽 아래에 우회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 산을 어찌 해발 240m의 기준으로 얕잡아 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나는 2시간 남짓 몸풀기 수준으로 퍼뜩 돌아내려와서 오후에 '한탕'을 더 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걸어 온 거리는 2km나 채 될까?

알기쉽게 비유를 하자면 진도 동석산은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처럼 악(嶽)자가 들어가는 큰 산의 암봉 부분만 평지로 내려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지나온 암릉구간(일부는 우회통과)

 

 

암릉산행은 여기쯤에서 멈췄다.

이후 구간은 날카로움이 덜한, 아기자기한(?) 암릉으로서 동석산을 찾아 오면서 차창 오른쪽으로 보았던 바로 그 암릉이다.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까 대개의 동석산 산행은 이보다 앞서 동석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삼동저수지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그러나 우린 바로 앞 바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내려 천종사 건너편 능선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이곳 능선에도 춘란이 서식하는 군락이었다.

 

 

 

 

동쪽 지능선으로 길을 잡으며 북쪽으로 이어진 암릉을 조망 

 

봄에 피어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면 과장일까?

 

 

 

천종사 건너편 능선에서 바라 본 동석산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골짜기로 내려서서 천종사 근처까지 내려와서 바라 본 동석산(12:00)

진안 마이산의 두 귀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좀더 멀게 벌려져 있는듯한 형상이다.

 

천종사 및 마을 위로 바라보는 동석산 풍경

그냥 풍경으로만 보기에는 산에 오르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이처럼 올려다 보는 것이 더 멋진 것 같다.

 

시각은 벌써 정오를 지난다.

2시간 반이면 되겠다는 예상은 어이없이 빗나가고, 오후 일정을 산행 대신에 땅끝마을 탐방으로 즉석에서 수정할 수 있음은 나홀로 발길따라 여행의 장점이다.

하여, 여유시간이 늘어나자 천종사 경내를 찬찬히 돌아보기로 하였다.(천종사 풍경은 따로 편집하여 소개할 예정)

 

 

 

 

 

 

이 암봉은 동석산이 아니고 진도를 돌아 나오면서 스친 풍경이다.

 

 

진도 동석산 안내도(분홍색 표시가 필자의 등산경로)

 

 

출처 : 자연과 더불어 자유인이고 싶은 사람
글쓴이 : 질고지놀이마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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