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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잊지 말자 - 6,25 - ! ! !

원고리 2014. 6. 20. 21:04

 

★★★.. 잊지 말자 - 6,25 - ! !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 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
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새로운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출처 : 조 쿠먼
글쓴이 : 조 쿠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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