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자료실

[스크랩] 골품제도 / 성골(聖骨) 과 진골(眞骨)

원고리 2014. 12. 17. 23:45

 

 

골품제도(骨品制度)

성골(聖骨) 과 진골(眞骨)


 

 

성골(聖骨)
신라 때, 골품의 첫째 등급. 부모가 모두 왕계인 사람을 이른다


진골(眞骨)
신라 때, 골품(骨品)의 하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왕족인 사람이다

 

 

골품제는 성골·진골의 골제(骨制)와
1~6두품의 두품제(頭品制)로 구분되는데
진골은 두품보다 높은 신분으로
중앙의 모든 관직에 취임할수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에서 진골은 성골보다 열위에 있었다

 

 

진골은 대부분 왕족출신이었고
일부는 인접국의 지배층으로 있다가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신분에 편입되기도 했다

 

 

성골과 진골의 차이는 확실하지 않지만
본래 같은 왕족의 범주에 속해 있다가
진흥왕의 장자인 태자 동륜(銅輪) 계열의 후손들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설화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혈통을 다른 왕족과 구별하고
신성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골 출신인 자장, 원측, 의상 등의 고승이 나타나면서
신라 불교는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진골 출신인 의상은 화엄종을 창건하고 전제 왕권을 옹호했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원래 진골만 있었고
성골은 없었는데 불교가 들어와서 공인된후
법흥왕후 어느왕(진평왕일수도)시기에
불교교리를 차용해 성골이란걸 만들었다고 하고

박혁거세부터 진덕여왕까지는 성골이고
무열왕이후는 진골이 왕을 했으나
성골과 진골의 차이는 알수없다란 학설도 있다

 


그러나 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성골이 없어지자
이후부터는 태종무열왕계의 진골출신이 왕위에 올랐다

 

 

진골이 신분상 모든 관등에 올라갈 수 있었고
각 중앙관서의 장관직을 독점한 데 반하여
6두품은 제6관등인 아찬(阿飡)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관직도 시랑(侍郞)이나 경(卿)과 같은 차관직밖에 차지할 수 없었다

 

 

복색·그릇·수레·가옥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진골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녹읍(祿邑)과 전장(田莊)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대규모의 목장과 노비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군사뿐만 아니라
학문·사상 분야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신라 하대에 들어와 진골의 수가 늘어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위해 민폐를 일으켰고
게다가 진골집단간의 왕위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신라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하여 결국 전국적인 농민반란이 일어나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다


 

 

 

 

출처 : 살핌과나눔
글쓴이 : 살핌과나눔 원글보기
메모 :